



사람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는 순간부터 갈등은 시작된다.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이로운지에 대해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 다. 2,500여 년 전 중국 춘추 말 전국 초의 사상가 묵자(墨子)는 바 로 이 지점에서 정치의 기원을 찾았다. 그는 세상이 어지러운 까닭 을 “사람마다 의(義)가 다르다(人異義)”는 데서 보았고, 제각각인 뜻을 하나로 모아 낼 어질고 능력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말했 다. 이 짧은 진단은 오랫동안 두 갈래로 읽혀 왔다. 한쪽은 묵자의 상 동(尙同)을 “윗사람이 옳다 하면 모두 옳다 하라”는 절대복종의 이 론, 곧 전제군주를 위한 전체주의 사상으로 읽었다. 중국의 곽말약 (郭沫若)이 대표적이다. 다른 한쪽은 같은 문장을 인민의 뜻을 아래 에서 위로 모아 올리는 소통의 제도, 곧 민주·민본의 사상으로 읽었 다. 양계초(梁啓超)와 기세춘을 비롯한 여러 학자가 이 길을 걸었 다. 이 책은 뒤의 독법을 따른다. 묵자의 사상을 전체 맥락에서 살펴 보면, 그것은 하늘의 뜻(天志)에서 비롯된 의(義)를 바탕으로 겸애 (兼愛)와 교리(交利)를 실천 강령 삼아 ’섬김’과 ’나눔’을 실현하려 했던 사상이며, 그 안에 민주주의의 원형이 담겨 있다. 인민이 스스 로 주인이라는 자각, 인민이 지도자를 선택한다는 민선(民選)의 발 상, 아래의 실정을 위로 올리는 상고제(上告制), 윗사람의 허물을 간하게 하는 개방적 언론관, 신분이 아니라 능력으로 사람을 쓰는 상현(尙賢)의 원칙이 그것이다. 6 머리말 이 책은 필자가 그동안 발표한 세 편의 원고—『묵자는 살아있 다: 묵자 사상의 민주주의적 독해와 『묵자』 주요 편 역해』, 『묵 자 철학의 재해석: 天志의 義에서 尙同의 민주성까지』, 그리고 논 문 「묵자 철학의 민주성에 관한 연구: 정의와 민주주의를 말하는 묵자」—에서 묵자 철학의 민주·민본적 요소만을 골라 하나의 체계 로 다시 엮은 요약본이다. 생애와 논리학, 자연과학, 문헌 고증처럼 민주성과 직접 관련이 적은 부분은 덜어내고, 민주성의 철학적 토 대와 제도적 기둥, 그리고 그에 대한 논쟁과 평가에 지면을 모았다. 묵자를 오늘 다시 읽는 일은 옛 사상가의 어록을 외우는 일이 아 니다. 신분 대신 자본과 학력이, 종법 질서 대신 새로운 불평등이 자리 잡은 오늘, 사람은 어떻게 서로 평등하게 대우받을 수 있는가, 정의로운 사회의 기준은 무엇인가, 권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되 묻는 일이다. 묵자는 그 물음에 2,500년 앞서 대답하려 했던 사람 이다.
2026년 10월 청호(淸扈) 박진우
묵자, 민주주의를 말하다. 전자책
9,9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