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은 끝나지 않았다. 이름을 바꾸고, 도시를 바꾸며 지금도 흐르고 있을 뿐이다.
낙타에 비단을 싣고 사막을 건넌 소그드 상인, 말안장에 불경을 묶고 인도로 향한 구법승.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실크로드를 걷는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지리적 이유로 실크로드는 시안에서 출발하는 중국 길과, 중앙아시아를 관통하는 길로 갈라진다. 저자는 그중 중앙아시아의 길을 택했다. 타슈켄트에서 시작해 사마르칸트·부하라·히바를 거쳐, 아나톨리아의 부르사와 이스탄불까지—20년간 역사 현장을 누벼온 문명여행자가 직접 두 발로 확인한 동서 문명 교차로의 기록이다.
이 책은 평범한 여행기가 아니다. 여섯 개 도시를 지나며 저자가 던지는 질문은 하나로 수렴한다. 문명은 왜 흥하고, 왜 무너지는가. 저자는 답을 이렇게 정리한다. "문명은 교만에 빠져 스스로 고립될 때 쇠락하고, 왕래를 통해 서로를 배울 때 커진다." 실크로드는 그 '배움의 통로'였고, 이 책은 그 통로 위에 남은 흔적—건축, 종교, 정치, 사람—을 하나씩 짚어가는 현장 답사기다.
타슈켄트 — 중원의 기록에 '석국(石國)'으로 남은 도시에서 시작해, 소련이 이 땅의 이슬람을 어떻게 다뤘는지까지 추적한다.
사마르칸트 — 티무르가 세운 제국의 수도, 레기스탄의 푸른 돔 아래에서 수학·천문·신학이 교환되던 순간을 되짚는다.
부하라 — 신앙과 학문의 도시. 이곳이 낳은 이븐 시나, 그리고 '그레이트 게임'의 무대가 된 칸국의 몰락까지.
히바 — 고립이 오히려 문명을 원형 그대로 보존한 사막 위의 도시.
부르사 — 중앙아시아에서 남하한 튀르크 세계가 마침내 제국—오스만—으로 체계를 갖춘 첫 수도.
이스탄불 — 아시아와 유럽이 해협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도시.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가 100년째 팽팽히 맞서는 현재진행형의 역사.
여행기이면서 통사(通史)다.
저자는 눈앞의 건축물에서 출발해 그 뒤에 켜켜이 쌓인 역사—흉노와 한나라의 충돌에서 시작된 교역, 몽골제국이 만든 '팍스 몽골리카', 대항해시대의 해상무역이 육로를 대체하는 과정, 19세기 제국주의 열강의 재발굴—까지 끌어올린다. 청금석이 이집트로 건너간 기원전 2천 년의 '청금석의 길'에서부터, 오늘날 중국의 일대일로와 튀르키예의 신실크로드 전략까지, 실크로드라는 하나의 축으로 4천 년을 관통한다.
감상이 아니라 근거로 말한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 플리니우스의 『박물지』 같은 1차 사료부터 최신 학술 논의까지 인용하며, 감흥에 머무르지 않고 사실 위에 해석을 쌓는다. 20년간 문명사·건축사·지중해사·실크로드를 현장에서 강의해온 저자의 내공이 문장마다 배어 있다.
지금 여기의 질문까지 놓치지 않는다.
신강 위구르 자치구의 무슬림 인구가 왜 존재하는지, '한국과 튀르키예는 정말 형제국인가'라는 익숙한 담론이 실제로는 어디서 시작됐는지—고대의 흔적을 따라가다 21세기의 뉴스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성은, 역사가 박물관 유리 너머의 일이 아니라 지금도 작동 중인 힘이라는 사실을 확인시킨다.
실크로드·중앙아시아·오스만 제국사에 관심 있는 독자
여행기와 역사서 사이, 깊이 있는 '지식 여행기'를 찾는 독자
이슬람 건축(마드라사, 미나렛, 스폴리아)의 맥락을 알고 여행하고 싶은 독자
우즈베키스탄·튀르키예 여행을 준비 중인 독자
안계환. 필명 문명여행자. 인류문명연구소 소장. 네이버 블로그와 유튜브에서 각각 '문명여행자'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문명사·건축사·지중해사·실크로드를 주제로 20년 가까이 현장을 답사하고 대중 강연을 이어왔다. 저서로 《성공하는 사람들의 독서습관》《변화혁신, 역사에서 길을 찾다》《안계환의 인문병법》《중국핵심강의》《유럽을 알아야 세상이 보인다》《최소한의 서양고전》등이 있다.
사마르칸트에서 이스탄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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